동베를린에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유
동서독 통일 이후 34년이 지났습니다. 이미 옛 동베를린 지역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는 얼마나 될까요?
죽음의 담장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이제 역사가 남긴 유물이 되었습니다. 해체된 장벽의 콘크리트 조각들은 진품보증서와 함께 기념품으로 팔립니다.
보존된 장벽의 일부는 < 이스트사이드갤러리 >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발하고 재치있는 화가들의 작품들이 그려진 갤러리가 되었습니다. 공원의 일부가 된 구역도 있습니다. < 마우어파크 > 베를린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공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 장벽공원 > 입니다.
10월 3일은 Tag der Deutschen Einheit, 독일 통일 기념일입니다. 1990년 10월 3일, 냉전시대 동안 동독 한 가운데에 섬 처럼 고립되었던 서베를린은 외부세계와 연결되었고 동베를린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장벽을 넘다가 총에 맞아 죽지 않습니다.
뜻밖의 부재: 동베를린 한인 교회가 없다?
처음 "옛 동베를린에 한인교회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믿기 힘들었습니다.
곧바로 구글맵에 베를린을 띄우고 "한인교회"를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교민들이 어디에 많이 사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어디가 옛 서독 지역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동서독 시절 독일에 정착을 시작한 교민들은 당연히 서독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연히 한인교회도 교민들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독일통일 34년이 지난 지금도 동독 지역에 우리 교민들, 유학생들, 한국어 사용자를 위한 교회가 없다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인구이동
통일 직전인 1989년 당시, 서베를린의 인구는 약 213만 명, 동베를린은 약 129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통일 이후, 서에서 동으로의 인구 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현재의 베를린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 도시입니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뉴욕이 이런 느낌일까? 싶습니다. 정말 다양한 인종을 만날 수 있습니다. 통일 이후, 저렴한 물가를 찾아 터키를 비롯한 중동 지역 이민자들이 동베를린에 빠르게 정착했고 베를린이 성장하면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과 청년들, 유학생들이 베를린을 찾아 왔습니다.
독일 생활비에서 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커지면서 동베를린 지역에 사는 우리 교민과 학생들이 늘어갔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을 찾는 젊은 교민 가정을 비롯하여 해외 취업으로 베를린에 온 청년들, 유학생들이 동베를린 지역을 찾은 것입니다.

동베를린 생활 초기에는 한국음식이나 식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한국 음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동베를린에서도 한국 식당, 한국음식 프랜차이즈가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동베를린에서 유독 찾아보기 힘든 것이 한인 교회입니다. 교민과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베를린 중심부나 서베를린 지역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또 다른 한인 교회가 필요한가?
이 질문을 저도 많이 했습니다. 결론은 '그렇다'입니다.
우리 교민과 학생들이 있는 곳에, 우리말로 예배를 드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교회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물론 외국생활, 특히 유학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현지 교회를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는 기꺼이 동의합니다.
저는 '현지 적응이냐 신앙생활이냐'라는 주제들은 양쪽에 놓고 저울질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한인교회를 찾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익합니다.
선교사가 한인 교회를 세우는 것은 선교인가?
이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이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저는 한인교회 목회자로 독일에서의 첫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에 < 한인교회 목회는 선교인가? > 라는 질문이 먼저 있었습니다.
결론은 역시 ‘그렇다’입니다. 이제는 이민 생활을 의미하는 단어가 된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유럽이 선교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입니다.
유럽에 정착을 했거나, 유학이나 직장을 위해 일정 기간을 머무르거나 상관없이 유럽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한국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인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별개로 한국기독교인들이 가진 성경에 대한 믿음과 여러 신앙 요소는 이곳 사람들에게 전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물론 한국교회의 사회적 입장에 대해 치열한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디아스포라의 원래 의미는 < 파종되었다 > 입니다.
남유다의 멸망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 로마제국에 저항했다가 지중해 전역에 강제로 분산된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의 입에서 < 유대인들이 파종되었다 >는 말이 나왔을 때,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씨앗이 뿌려진 것 처럼, 지중해 전역에 유대인들이 뿌려졌으니 그들의 신앙이 씨앗처럼 온 세상에 퍼져나가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릅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저는 해외에 뿌려진 우리 한인들이 과연 그 땅에 뿌리를 내린만큼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있는지, 또 그 씨앗이 떨어져 죽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또 다른 열매를 맺어 왔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동베를린에 지속가능한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이것이 제가 동베를린에 디아스포라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유입니다.
파종은 되었는데, 뿌려지고, 뿌리를 내려 정착을 했으니, 이제는 다음 세대 까지 이어지는 < 지속가능성 > 있는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세워져야 합니다.
씨앗은 이미 뿌려졌고, 뿌리를 내리고 정착을 했습니다. 이제는 다음 세대 까지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생존을 넘어 증인의 삶을 함께 살아갈 디아스포라 공동체 세워질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동참할 동역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 2세, 3세들과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그들을 제자로 세워가는 교회,
베를린에서 유학 생활을 이어가며, 배움과 더불어 믿음도 성장하여 조국교회의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이끌어갈 청년들을 제자로 세우는 교회...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경을 함께 읽고, 배우고, 서로 나누며 격려하면서 동베를린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이루어갈 지체들을 기다립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을 동베를린 선교에 초대합니다.